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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고창 읍성의 영산홍 꽃

고창읍성


고창읍성의 전경 및 유래

 

전북 고창군 고창읍성이 영산홍 꽃으로 인해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물들었다.

고창읍성의 형태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40,172평)

조선시대 외침을 막기 위해 지어진 성으로, 모양성 이라고도 불린다.

문화재 지정 : 사적 제145호(1965년 4월 1일 지정)

 

고창읍성의 연산 홍빛 모습들

 

연혁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성은 나주 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 호국을 위한 국방 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1965년 4월 1일 사적으로 지정된 이 성의 동, 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의 치성을 비롯하여 성 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 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 건물과 2지 4천이 있었으나 전화로 소진되고 성곽과 공북루만

남아있던 것을 1976년부터 옛 모습대로 복원해 오고 있다.

 

고창읍성의 특징

 

조선시대의 읍성은 평야지대에 양면을 돌로 쌓아 만들고 성문 위에는 누각 을지어 적을 감시하고 전투를 지휘했으며

성내에서는 관민이 함께 생활하였다.

고창읍 성만은 나지막한 야산을 이용하여 바깥쪽만 성을 쌓는 내탁 법 축성 기법을 사용하였으며,

성문 앞에는 옹성을 둘러쌓아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축성하였다.

또한, 성내에는 관아만 만들고 주민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가 유사시에 성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싸우며 살 수 있도록 4개의 우물과 2개의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성벽에는 축성에 참여 고을 이름과 축성 연대가 새겨져 있어 계유년(1453) 전라 좌, 우 도민들이 모두 참여하여

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축성 목적

 

산성은 성과 연결이 잘 되는 곳에 축성하게 되는데, 고창읍성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입암산성이 있으며,

입암산성은 나주 진관과 더불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호남 내륙에서 한양에 갈 때는 노령산맥인 갈재를 넘어야 했다.

그런데 갈재는 험준하고 봉변을 주는 곳이었다.

이러한 곳을 지키고 영광, 고창, 장성 등 부근 지역의 농산물과 해산물을 법성포를 통해 반출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입암 산성이 담당했었다.

서해안을 노략질하는 왜구도 입암산성에서 막아야 하는데, 입암산성과 법성포와 고창, 영광지역은

너무 멀어 입암산성의 힘이 크게 미치지 못해 서해안 일대를 지키는 전초기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고창읍성은 이런 이유로 축성되었고 호남 내륙을 왜구의 노략질로부터 지켜왔다.

 

영산홍의 꽃말 및 유래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관목들의 총칭.

키는 15~90cm 정도로 자란다.

꽃의 색은 붉은 계통이 대부분이나 노란색이나 흰색도 있다.

꽃은 한 가지 끝에 한 송이의 꽃만 피며, 꽃잎의 모양은 겹잎인 것, 길게 갈라진 것, 쭈글쭈글한 등 아주 다양하다.

잎은 어긋나고 가지 끝에 모여나며 가지와 함께 갈색 털이 있다.

일본에서 들여와 관상용으로 심으면서 우리나라에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는 기침을 가라앉히거나 이뇨·구토제 등의 약재로 쓰인다.

 

가시는 길

 

위치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82-6 ( 주차장 )

 

주변 관광지

학원농장 : 청보리밭 으로 유명한 장소
                  학원농장은 2015년 1월 현재 운영 진영호의 부친 전 국무총리 진의종 씨와 모친 이학 여사가
                  1960년대 초반 고창군 서남부 미개발 야산 10여 만평을 개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농장 이름은 이 지역의 옛 지명 "한새 골"에서 유래하는데 여기서 "한새"는 이 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백로, 왜가리 등을 이르는 말로 주 설립자인 이학 여사의 이름가 "학"과 이미지가 같아 들을 뜻하는
                  한자어"원" 화 합려 "학의 들"이라는 뜻에서 "학원농장"이라 하였습니다.

문수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644년(의자왕 4)에 신라의 자장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653년(효종 4)에 성오와 상유가 중창하고, 1764년(영조 40)에 신화와 쾌영이 중수하였다.
              1835년(헌종 1) 우홍이 다시 중건하였다. 1989년에는 칠성각을 지었으며 1997년 고창군의 지원을 받아
              한산전을 해체 복원하고, 범종각과 범종을 조성하였다.

              창건 설화에 따르면,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하는 길에 이곳을 지나는데 당나라에서 수행하였던 청량산과 같은
              느낌을 받아 이곳 석굴에서 7일 동안 정성껏 기도를 드렸는데, 땅 속에서 문수보살이 나오는 꿈을 꾸어 그곳을
              파보니 커다란 문수보살입상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세우고 문수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백제의 영토에 속하였고 백제와 신라가 심하게 대립하던 시기였으므로 신빙성이 없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전북 유형문화재 51), 문수전(전북 유형문화재 52), 명부전, 나한전, 누각, 요사,
              산문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수사 [文殊寺] (두산백과 두피 디아, 두산백과)


운곡 람사르 습지 :  
             과거 주민들이 습지를 개간하여 계단식 논으로 사용되던 곳이었으나, 1980년대 초부터
             운곡저수지의 물이 영광원자력발전소의 냉각수로 공급되면서 30년 넘게 폐경지로 유지됐다.
             그 후 자연 스스로 현재의 원시 습지 상태로 복원되어 수량이 풍부하고 오염원이 없는 깨끗한 습지가 되었다.

             운곡습지는 크게 운곡 저수지 주변의 호소 습원과 운곡저수지의 수원이 모이는 오베이골 주변의 저층습지로 나
             뉜다. 운곡습지는 호소, 호소 습원, 저층습지 등 다양한 생태환경을 나타내고 있어 희귀 야생 동식물의 서식처로
             이용된다.

 

 

 

즐거운 여행지에서 힐링되는 시간을 만들어 보세요.

 

감사합니다.